필로스토리의 두 스토리 디렉터가 서로의 이야기를 인터뷰하고 기록했습니다.



내 안의 '진짜' 이야기를 찾아서


채자영님은 ‘직관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남들이 뭐라든,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은 결국 선택의 순간에 직관을 따랐어요. 그렇게 해 보니 그게 맞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어요. 처음에는 조금 힘들지언정, 내가 내 선택을 따라서 그게 맞았음을 스스로 증명해냈을 때의 쾌감이 있어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해서 선택을 한 적도 있었나요?

어릴 때 했던 선택이요. '아나운서가 되어야겠다'고 했을 때도 그랬어요. 부모님이나 선생님, 세상 사람들의 눈에 맞춰서 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너 이거 하면 좋을 것 같아'라고 해서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게 저에게는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직관을 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직관을 따른다는 게 되게 어려운 일 같아요. '이게 내 직관이 맞나?’,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맞나?’ 들여다보는 게 힘든 과정이잖아요. 아나운서가 되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저 스스로는 충분히 고민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진짜 '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질문이 남았어요.

제가 그런 고민들을 치열하게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경험을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요. 선택을 내리고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단순해져야 해요. 단순해지지 않으면 결단을 내리기가 어려워요. 계속 고민과 걱정이 꼬리를 물죠. 부수적인 건 버리고 본질만 생각해야 그걸 따를 수 있는 용기가 생겨요.


단순해져야 한다는 말이, 솔직해져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해요. 하지만 ‘솔직함’과 ‘무례함’은 구분될 필요가 있어요.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존중하는 채자영 특유의 솔직함이 신선했어요. 그 ‘밸런스’의 기술이 있다면?

저는 원래가 솔직하고 감정 표현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에요. 언어적 감수성을 키우면서 그런 모습은 조금씩 사라졌지만, 때론 무례할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누군가에 대한 감정을 숨기거나 다른 방식으로 덮으며 ‘막’을 치는 것이 더 무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만의 방식을 터득했던 것 같아요. 솔직하면서도 무례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요.

어렸을 때 저는 선물을 참 못 하는 사람이었어요. 친구의 생일에 너무 예쁜 핀을 발견하고 선물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 친구는 머리가 짧아서 핀을 할 수 없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그 친구에게는 그 핀이 필요하지 않았던 거죠. 제가 가지고 싶은 걸 줬던 거예요. 상대방의 상황에서 생각해보는 것,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을 알게 됐어요.

프리젠터로 일하면서 그런 역량이 더 키워진 것 같아요.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에는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러려면 이 사람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사소한 단서들을 키워드 삼아 관찰하고 그것을 콘텐츠화해야 하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과 선물을 하는 것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상대방이 관심 있고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는 것. 그것을 예쁘게 포장해서 건네는 것.


나누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솔직함은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인문학과 닿아 있는 것 같아요. 평소 채자영님을 지켜보며 어떤 일을 겪으며 흔들리는 감정을 직면하는 사람, 실수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며 계속해서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느꼈는데요. 그런 채자영을 만든 건 어떤 영향일까요?

저는 힘들다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고 가정 형편도 어려웠고요. 그런 상황에서 ‘나 같은 사람도 잘 될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성장에 대한 욕구도 컸고, 그 성장을 잘 기록해서 ‘나중에 나와 같은 것을 겪은 사람이 있으면 알려줘야지’ 하는 마음이 컸어요. 그러면서 내가 왔던 길들을 돌아보고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그것을 나눌 기회가 정말 생겼나요?

그런 마음을 품고 살다가 우연한 기회로 처음 재능기부 강의를 하게 되었을 때, 너무 좋았어요. 나눠주는 게요.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가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행복하게 살면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과정에서 제 삶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어떻게 보면 그냥 개인의 삶이잖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치 자기의 삶인 것처럼 저를 응원해주고, 그 에너지의 교류가 저에게 너무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저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저도 그 사람들로부터 힘을 얻고요.

그러면서 성장에 대한 욕구나 반성하는 태도는 더 커졌고, 실패하는 것에 두려움은 더 없어졌어요. 성공이라는 단어 뒤에는 무수한 실패가 있잖아요.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좋아해 줌으로써 저도 '넘어져도 괜찮아'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그게 지금까지의 저를 끌어온 힘 같아요.


일 관점에서의 '성공'이나 '실패'를 떠나서, 인간 채자영에게 인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제가 어느새 ‘어른’이 됐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요즘 ‘좋은 어른이 뭘까’를 많이 생각하는데요. 아닌 건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하지 못하는 건 하지 못한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요. 어른도 잘못할 수 있고, 어른도 상처받을 수 있고, 어른도 넘어질 수 있잖아요. 우리 사회에는 그런 관용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어른도 똑같은 사람인데 말이에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실수하고, 넘어지고, 반성하고, 나아가잖아요. 인문학의 본질은 ‘나는 누구인가’,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인문학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저에게 인문학은, 내 스스로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관심을 더 많이 갖고, 잘 살아가는 방법,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는 거예요.


스킬은 기본, 
프레젠테이션의 매력을 결정하는 건 '자기다움'


전문 프리젠터라 하면 '말 잘하는 법', '시선 처리' 그런 스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것 같은데요. 채자영님은 그런 스킬보다는 본질에 관심이 있어 보여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서 정말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은 저에게 많이 맡기기 시작했어요. 감사했죠. 그런데 그럴 때마다 들었던 칭찬이 "자영이 프레젠테이션은 자연스러워."라는 거였어요. 자연스럽다는 게 뭘까? PT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자연스러워요. 그 프레젠테이션 뒤에는 엄청난 연습이 있어요. 치열한 연습을 통해 완전히 내 것이 될 때까지 단련해야 해요.

하지만 자연스러움은, 스킬적인 부분을 단련한 후 나만의 매력을 섞었을 때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스킬만 궁금해 해요. 스킬만 마스터하면, 최고의 프리젠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그 사람만이 가진 매력을 더해야 진짜 자연스러움, '잘한다'는 프레젠테이션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야기’를 스스로의 키워드로 삼고 오랫동안 ‘말’의 본질을 파헤쳐 왔고 '이야기의 힘'을 강조하고 있어요.

당연히 스킬도 중요해요. 전 다만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본질, 그 본질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해요. 전문 프리젠터로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프레젠테이션 스킬’을 물어봤어요. 말을 잘 하는 ‘스킬’도 중요하지만 너무 그것만 물어보니까, 답답한 마음이 들었어요.

'왜 말을 잘 해야 돼?' 저는 이 질문부터 다시 생각했어요. 그 사람의 ‘말’이 좋다는 건, 그 사람의 ‘생각’이 좋다는 것이에요. 화려한 언변이나 스킬이 아닌 본질과 생각, 아이디어가 좋은 것이죠. 아이디어가 단단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스킬만 단련하면 껍데기뿐인 말이 돼요.

스킬도 중요하지만, 생각을 단련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빨리, 말을 잘 할 수 있는 스킬을 배우고 싶어해요. 스킬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미 많으니 나는 본질을 조금 더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나다움을 '프레젠테이션'하는 이야기의 힘


최근에 스토리 디렉팅 그룹 필로스토리를 창업해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싶은 개인과 브랜드를 위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만들고 있어요. '스토리젠터'라는 나만의 직업을 만들고, 'FIND YOUR STORY'라는 슬로건으로 활동해 온 것, 그런 모든 것들이 천천히 쌓여 자연스럽게 하게 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과 너무 잘 어울리는 일을 하게 됐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야기의 힘을 계속 강조해 왔는데, 우리는 왜 우리의 이야기를 찾아야 할까요?

저는 '스토리젠터'라는 이름을 만들고, 나만의 콘텐츠를 쌓고, 그걸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그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팟캐스트도 했었는데, 그것도 처음에는 사실 재미로 했어요. 그런데 너무 신기하게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운로드를 받는 거예요. 그런 과정들이 너무 신기했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내가 가진 걸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줬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깨달았어요.

내가 가진 나의 콘텐츠를 나만 보는 게 아니라 쑥스럽고 창피해도 다른 사람들 앞에 드러냈을 때의 힘을 느꼈어요. 어떤 사람은 위로를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공감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걸로 인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기도 하고요.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잖아요. 누구나 타인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은 욕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되려면, 사실 스스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하고,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만들어야 해요. 내가 건강해야 좋은 에너지를 타인에게도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죠. 그렇게 되려면 내가 진짜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잘 들여다보고, 행동하고, 자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해야 해요. 그렇게 하면 누군가와 교류가 일어나고 에너지가 순환되고 나의 건강함이 더 커져요.

저는 그것을 경험했어요. 1:1로 대화를 해도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사람이 진정성 있게 눈빛으로 공감하면서 바라봐줄 때 그 만족감이 너무 크잖아요. 저는 그것을 꼭 친한 친구가 아니어도, 인간으로서 다른 타인과 나눌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걸 더 많은 사람들이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나다움'을 발견하는 것,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이름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프리젠터라는 직업을 좋아하고 정말 흠뻑 빠져서 일했어요. 그렇다 보니 일종의 직업병일 수도 있는데, 프리젠터는 항상 ‘같지만 다른 무언가’, 차별화 포인트를 발견하고 전달해야 해요.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은 서비스라 해도, 조금이라도 다른 점을 찾아내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파격’은 들어본 적도 없는 것, 완전히 판을 바꾸거나 완전히 새로운 것을 하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살짝 비트는 것에서 발생한다고 해요. 그게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진짜 원하는 내 모습이 뭘까’를 많이 고민해야 해요.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하고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내 모습을 선언하는 게 중요해요. 단호함이 필요하죠. 나에 대한 단호함과 자기 확신이요. 사실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해봤는데 아닐 수도 있는 거고, 그럴 때 아니라고 하고 다시 돌아서는 것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고요.

두려워도 생각이 단단해질 때까지 끈질기게 가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생각의 지구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고민하는 것도 힘든 일이니까요. 특히 당장 내 생계에 도움되지 않는 ‘나’에 대한 고민, 지금 당장이 아닌 먼 미래를 위한 고민이라면 더 그렇죠. 하지만 생각이 단단해지면 말도 분명해져요.


아나운서, 전문 프리젠터, 그리고 지금 필로스토리를 창업하기까지. 연결되는 일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다른 일들을 해왔어요. 일반적인 커리어는 아닌 것 같아요. 사실 하나만 했어도 충분히 잘 했을 것 같은데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해 왔어요. 그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내일, 일년 뒤가 아니라 10년 뒤까지, 아주 멀리 보는 것이 습관이었어요. 현재를 위한 이득보다는 먼 미래를 상상하면서 선택을 하는 버릇이 있었어요. 사실은 당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선택지는 많았어요. 그런데 그건 저와 잘 맞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넓게, 깊이 있게, 하고 싶은 일의 영역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성장 욕구가 강한 편이에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성장덕후’라고 놀림을 받을만큼요. 누군가에게서 ‘너는 식물같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식물은 항상 햇빛을 찾아 성장하잖아요. 그 표현이 좋았어요. 지금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어디론가 나아가고 싶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고, 내일 더 괜찮았으면 좋겠고. 그런 마음들이 저를 그렇게 가게 해요.


'자기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니 궁금해지는데요. 스스로의 모습 중 어떤 모습을 가장 좋아하나요?

옛날부터 ‘귀엽다’는 말을 듣는 걸 좋아했어요. 귀엽다는 말은 정말 사랑스러운 말 같아요. 모든 걸 포괄할 수 있어요. 제가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하는 유치한 짓이 있어요. 그럴 때는 초등학교 때 얼굴이 그대로 나와요. 그 때 웃던 얼굴이 똑같이요. 유치한 말장난이나 유치한 짓을 하는 제 모습이 너무 좋아요. 이렇게까지 내가 유치해질 수 있다니. 요즘엔 주성치 영화에 빠져 있는데요. 주성치를 보고 깔깔거리면서 웃는 제 모습이 좋아요. 내가 겨우 저런 유머를 보고 있는 웃을 수 있는 인간이라니! 너무 치열하고, 무게감이 많이 느껴지는 일을 하다 보니, 일상에서는 반대로 가벼워지는 순간들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걸 넘나드는 감각이 좋다고 해야 하나요. (웃음)